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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생명으로 맞바꾼 인생

Exchanged Life


옛 사람과 새 사람 
(Source: 노만 그럽 Norman Grubb 의 "제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 Unlimited God" 에서 발췌)

그리스도인의 삶과 섬김에서 자주 혼동되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바울이 제기한 '옛 사람'과 '새 사람' 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미들이 원래부터 혼란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올바른 토대 위에 자기 믿음을 세우고 싶어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때로 신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자기 고백으로 삼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말씀들을 대할 때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롬6:8),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이런 말씀들에 부딪히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글쎄요, 맞기야 하죠. 그런데 정말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그런 상태겠지요. 그런데 세상 살 때는 아니지요!" 상당히 그럴듯 합니다.

어느 누구도 말씀에 대해 변명 거리를 찾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옛 사람을 벗으며' 어떻게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혹시 두 사람 모두이거나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하는 것 아닙니까? 신자가 어떤 때는 옛사람이었다가 어떤 때는 새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까?

야고보는 두 마음, 두 혀, 두 동기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경험한 대로 단번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했다고 들었으면서도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혼동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 입니다. 죄나 거룩함을 우리 안에 깊이 배어든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자신이 거룩하다든가, 죄 되다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자신이 두 본성 중 어느것, 즉 육에 속하거나 영에 속하게 되었다고 여깁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듭나기 전에 우리의 인격은 전염병처럼 죄에 간염되어 있었는데 은혜로 거듭난 이후 부분적으로 거룩함이 들어왔고 죄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흔적을 분명히 의식합니다. 갑자기 교만과 화가 끓어오르거나, 계속해서 충동을 느끼고, 자극받을 때가 바로 그런 때 입니다. 하지만 거룩함 역시 의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거룩함과 죄악의 혼합물인 것처럼 느낍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가장 큰 착각은 죄나 거룩함이 '우리 자신' 에게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역시 수년 동안 이 부분에서 막혀 있었습니다. '온전한 성화' 나 '정결한 심령'의 경험을 증거로 드러낼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도 의문이 풀리지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성화의 단계로 들어갔었고 성령께서 내 영과 더불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리고 내 안에 사는 분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다"든가, "성화된다"든가, "죄로부터 온전히 깨끗해진다"든가, "죄에 대해 죽는다"든가,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든가 하는 진술들이 내 경험 속에서 절절히 깨달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 자신이 그분의 완전함에 미치지 못함을 날마다 깨달아야 했고 회개와 고백과 죄 씻음을 필요로 하는 죄들도 날마다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난감함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죄와 거룩함을 잘못된 위치에 두었기 때문이었니다. 죄와 거룩함은 모두 본질적으로 두 인격 가운데 하나의 속성들로서, 그것들 중에 어떤 것도 내 자신의 속성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성령의 계시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이제 나의 관심은 나 자신에서 벗어나 이들 두 인격,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세상에 있는 이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앞에서 이미 여러 차례 기본 진리를 언급해 왔지만 이것은 너무 근본적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고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죄란 사탄이고 거룩함이란 예수님입니다.

이미 말했던 대로 실제로 우주에 유일한 한 인격이 계시고 이 분은 '스스로 있는 자'라 말씀하셨던 분이며,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이라고 소개하시며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 불리시고 '생명, 사랑, 빛, 진리, 능력' 으로 일컬어지는 분이십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완전한 의미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도록, 그 온전한 창조의 목적을 위해 다른 창조물들과 달리 인격적 존재로 창조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거룩함, 사랑, 능력과 생명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며, 나는 조금도 소유할 수 없는 것으로 지금 뿐 아니라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내 안에 계신 그 분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후 내 관심은 부분적으로 내 자신이 거룩해지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부터도) 내게 '지혜, 의, 성화'를 허락하실 그분께 향하였습니다. 이처럼 영원한 생명이나 하늘의 성품이 내 안에 계신 그 분의 것임을 아주 명백히 알게 되었을 때, 거듭나기 전의 내 자신을 돌아보는 일도 더 쉬워졌습니다.

지금 죄는 '이 세상에 있는 자' 의 것이며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역사하는 영'으로, 바울이 지적한 대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안에서 그들의 마음을 혼미케 합니다(고후4:4). 성령은 거룩함을 드러내시지만, 죄는 거짓 영으로서 그 중심으로부터 죄를 드러냅니다.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이 자가 누구인지를 밝혀 냈습니다. 그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에 따르면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요일3:8). 마귀가 바로 죄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고 있던 마귀를 쫓아내고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가인의 살인 사건을 통해서 미워하는 자요 살인하는 자가 어떻게 가인 안에 들어가 가인을 악의 대리자로 삼았는지 보았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내주자께서 자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사용하신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인간이란 언제나 내적으로 자기를 다스리며 의지할 수 있는 주인을 모셔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전에는 혼자 버티며 살아오다가 새로이 익숙해져야 하는 낯선 관계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주하는 인격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그 내주자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대단히 영리한 사탄은 타락한 인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거의 완벽하게 숨김으로써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이 내적으로 다른 영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임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우리 자신이 우리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사탄은 자신을 뿔과 꼬리가 달린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비웃음을 사게 만들어 그의 무서운 본질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듭니다.

결국 죄란 모든 형태의 "자기 사랑"으로, 우리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니라 조종되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인간이 들이내쉬는 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위나 인품이 아무리 고상해 보여도 자기 사랑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죄 없이 산다는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과 연합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멋진 선물을 깨닫는 데 무슨 특별한 믿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믿음은 바울이 '옛사람'이라 칭한 이전의 낡은 연합에 묶여 있던 믿음이, 은혜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새 사람'이 되는 연합의 믿음으로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해 또렷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우리 인간 자체의 변화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죄인 되신 분도, 죄에 대하여 죽으신 분도, 성령으로 살아나신 분도 같은 예수이십니다.
죄에 대해 죽은 자로 간주되고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남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자도 같은 존재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인간을 통해 다스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가 다를 뿐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았다고 선언하면서, 전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의의 종이라고 네 번이나 반복해 말했습니다. 새 사람으로 살 때나 옛 사람으로 살 때나 우리는 언제나 종이었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내 관심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였지만 이제는 "내 안에 있었던 인격적 존재가 누구였고 지금 계신 그 분은 누구신가"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죄가 많았는지 거룩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연합된 인격이 죄인지 아니면 거룩함인지"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죄에 대해 죽었고 하나님에 대해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못박혔고 죄의 몸은 멸하였습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인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온전한 성화'나 '정결한 심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새 사람 되었고, 그 둘은 공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은 미혹의 영과 연합되었지만 새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의 영에 연합되었을 때 나는 단번에 또한 영원히, 죄와 분리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의 영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그 순간 그 분의 죽음이 내게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처럼, 성령이 내게 오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도 내 안에서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은 단 한번으로 족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건도 꼭 한 번으로 완성됩니다. 이런 사실에 기초해 내가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옛 사람(내 안에 있던 사탄)은 영원히 쫓겨났고 나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며, 이것이 '온전한 성화'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로서 구별되어 그 분에게 속하게 된것)와 '정결한 심령'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적인 사랑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는 수단으로서의 사랑의 능력)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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